최근 3년간 집값은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2020년, 2021년엔 하늘 높이 솟았죠. 2022년엔 가파른 금리인상에 폭락했고요. 뒷짐지고 있던 정부는 집값이 낙폭을 키우자 부랴부랴 규제를 풀었습니다. 다행히 규제완화는 먹혔습니다. 올 2월부터 주택 매매거래량이 소폭 늘었습니다. 시장 경착륙은 막은 겁니다. 최근 시장엔 살짝 온기도 돕니다. 계속 늘어날 것 같던 미분양 물량도 줄었고요.
그럼 현재 부동산시장은 어떤 상황인가? 조급함을 버리고 냉정하게 시장을 분석해 내게 맞는 내 집 마련 전략을 도출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먼저 2022년 하반기 집값이 하락한 원인부터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집값 하락 원인은 금리인상이었습니다. 한데 이상합니다. 2000년대 노무현 정부 시절엔 지금보다 금리가 높았는데도 집값이 올랐거든요. 저도 2006년에 아파트를 분양 받아 입주했습니다. 당시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6~7%대였습니다. 연 5%대 집단대출을 받고 금리가 낮아서 좋다며 박수를 치던 기억이 납니다. 같은 고금리 상황인데 왜 그때는 집값이 올랐고 지금은 떨어지는 걸까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금리는 집값을 결정하는 여러 변수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론 과거 금리인상기에 집값이 오른 경우가 더 많았죠. 라이터를 켜는 것만으론 불이 붙지 않습니다. 마른 장작이 있어야 라이터 불꽃이 트리거(trigger)가 되어 불이 붙죠. 즉 지난해에 금리인상은 집값 하락의 트리거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정리하면 당시의 급격한 집값 하락은 소득 대비 과한 상승에 따른 피로감, 과거보다 강화된 금융의 지배 등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지금 추격 매수를 해선 안 되는 이유를 알아봅니다.
1. 대출 상환 부담이 너무 크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아파트값은 2~3배 뛰었습니다. 하지만 소득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2012년 서울 아파트의 연소득대비주택가격비율(PIR)은 11~12였습니다. 2022년엔 18~19까지 올랐고요. 즉 18년간 아무것도 사지 않고 소득을 모아야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겁니다.
지나치게 오른 집값에 비례해 소득이 따라가진 못했지만, 우린 집값이 더 오를 거란 기대감에 대출의 힘을 빌려 파티를 즐겼습니다. 당시 저금리, 유동성 파티는 달콤했죠. 하지만 금리인상을 알리는 종이 갑작스레 울렸고, 냉혹한 현실 앞에 우린 얼어붙었습니다. 집값이 오른 만큼 대출 총량도 늘어났는데, 저금리에 숨어 있던 대출이자 부담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2006년 당시 서울 마포구의 30평대 아파트값은 5억~6억 원 정도였습니다. 대부분 집값의 40%인 2억~3억 원을 대출받아 아파트를 샀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 마포구 아파트는 15억~20억 원까지 올랐습니다. 40% 대출을 받으면 6억~8억 원 정도 됩니다. 즉 현재 금리 수준은 2006년과 비슷하지만 대출액은 2배가 늘었습니다. 여기에 원금 상환 부담까지 더해 돈을 빌리는 부담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대출 앞에서 냉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2. 집값 상승 기대치가 꺾였다
사실 대출이자가 무서워도 집값이 더 오를 것 같으면 사람들은 집을 삽니다. 요구수익률보다 기대수익률이 높을 때 투자를 결정하니까요. 하지만 현재 시장엔 집값이 더 오를 거란 기대감이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 5년(2017~2021년)간 쉬지 않고 오른 데다, 최근 7년 동안 2~3배는 족히 상승하는 바람에 그 에너지가 거의 고갈됐습니다. 과거엔 어떻게 올랐느냐고요? 노무현 정부 시절(2003~2007년)엔 1997년 IMF 사태, 1기 신도시 완공(1990년대) 등으로 저평가된 집값 상승 에너지가 오랫동안 축적된 상태에서 급증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에너지를 상당 부분 사용한 거로 보입니다. 2020년 들어 집값 상승세가 꺾일 때가 되었는데, 금리인상이 트리거가 되어 구매 욕구와 구매 능력을 모두 꺾어놨죠.
3. 전세가 배신했다
여기에 최근 믿었던 전세까지 배신했습니다. 전세는 무이자 대출과 같은 개념으로 전셋값이 오르면 매맷값을 밀어 올리고, 매맷값이 떨어지면 떠받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 전셋값이 최근 1~2년간 고금리에 속절없이 떨어졌습니다.
과거 전세는 내 돈을 집주인한테 맡기고 계약이 끝날 때 받아 나가는 구조이기에 금리의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09년 이후 전세대출을 시행하며 금융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금리가 오르면 전세대출을 받은 임차인의 부담도 함께 늘어났습니다. 이제 금리가 오르면 매맷값과 함께 전셋값도 동반 하락하는 구조가 되었죠. 더는 금리인상기에 전세가 매맷값의 버팀목 역할을 해주지 못합니다. 그간 저금리 기조에 숨어 볼 수 없던 집값에 대한 금융의 지배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우려한 일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셋값이 올라 매맷값을 밀어 올릴 거란 기대는 산산조각 났습니다. 전셋값이 하락하자 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을 겪는 임대인이 늘었습니다. 빌라와 오피스텔을 중심으로 여기저기서 전세 사기가 터지며 신용이 기반인 전세에 대한 믿음조차 흔들리고 있습니다.
4. 2차 하락은 아직 오지 않았다
최근 시장의 회복 움직임을 두고 일시적 반등이냐, 대세 상승이냐 말이 많습니다. 미래는 알 수 없으니 과거를 살펴봅시다. 다음은 2004년부터 2022년까지 PIR 그래프입니다.
PIR은 조사 기관의 표본추출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는 만큼 흐름만 읽으면 됩니다.
진정한 하락장의 끝은 2차 하락이 지나가야 옵니다. 집값 ‘바닥’은 다시 상승장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관문입니다. 산 넘어 다음 산으로 가려면 골짜기를 지나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 차례 대세 상승 후엔 조정을 거쳐 바닥을 찍어야 다음 상승장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5. 정부의 히든카드가 남아있다(2차 하락 시그널)
미래는 신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미래의 거울인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2차 하락 시그널, 즉 바닥 시그널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 네 가지 징후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서울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② 서울(강남·서초) 규제지역(조정대상지역) 해제
③ 서울 아파트 구매 시 DSR 규제 해제 또는 완화
④ 양도세 특례(5년간 양도세 면제)
이렇게 집값이 폭락할 때 쓰려고 남겨둔 최후의 카드까지 꺼내 부동산 규제를 푼다는 건 서울 강남 집값이 크게 하락했다는 의미입니다. 즉 강남 집값이 급락하면 하락장은 마무리됩니다. 이때 패닉셀링(투매) 현상이 나타나며 고점 대비 30~50% 하락한 급매물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런 시그널이 나올 때 공포의 지배를 받기보다 이를 기회의 발판으로 삼아야 합니다.
6. 인생은 길다
“서서히 집값이 오르는 것 같은데 올해 집을 사야 할까요?”라고 누군가 물으면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지금 집이 정말 필요한가요? 앞으로 3년쯤 집값이 오르지 않아도 대출이자를 내며 잘 버틸 수 있나요? 그렇다면 고점 대비 30% 이상 떨어진 급매물을 잡으세요.”
지금은 2022년 하반기에 온 1차 하락 집값이 보합 상태입니다. 만약 올해 집을 사야 한다면 집값이 상대적으로 덜 떨어진 서울을 고집하기보단 인천 송도나 경기 동탄신도시 등 낙폭이 큰 지역의 아파트를 노리는 게 좋습니다. 올해 당장 내 집이 필요하지 않거나 가진 자금이 부족한 이라면 2차 하락을 준비하는 게 현명합니다.
때로 우리는 너무 급합니다. 지금 당장, 적어도 올해 안에 답을 찾고 끝을 내려 합니다. 왜 꼭 올해 안에 답을 찾아야 할까요? 적어도 20·30대의 인생은 깁니다. 앞으로 많은 기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초조함과 조급함은 미래의 기회를 갉아먹는 좀비와 같습니다. 내 집 마련은 필수지만, 당장 필요한 게 아니라면 그걸 꼭 올해 살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절대 남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친구나 지인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진 않습니다. 누구도 내 대출을 대신 갚아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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